전면전 치닫는 HD현대 vs 한화오션···8조 규모 ‘차세대 구축함’ 절친들의 승부

시간:2024-03-28 19:51:42 출처:money roll 슬롯

전면전 치닫는 HD현대 vs 한화오션···8조 규모 ‘차세대 구축함’ 절친들의 승부

올 하반기 예정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입찰을 앞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정면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최근 ‘KDDX 사업’ 군사 기밀 유출과 관련해 양 사가 공방을 이어가다 고발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특수선(군용함선) 시장 ‘양강’의 힘겨루기가 심화되는 모양새다. 이번 경쟁을 한 살 차이에 절친으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두 사람의 경영 능력을 비교하는 시험대로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되면서 총 사업비 8조원에 달하는 사업 향방에 더욱 재계 관심이 모인다.

KDDX 사업은 선체부터 전투 체계, 레이더 등 각종 무장까지 국내 기술로 건조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t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해군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해군 전력의 핵심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엔진을 제외한 ‘완전 국산화’ 함정으로 개발한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진다. 여기에 사업비 규모가 무려 8조원에 육박하다 보니 두 회사가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사업은 개념설계 → 기본설계 → 상세설계·초도함 건조 →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되는데 개념설계는 앞서 201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주했고,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따냈다.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각각 나눠 수행한 두 회사는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 초도함 건조까지 반드시 따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한화오션이 울산급 Batch-Ⅲ 호위함과 한국형 구축함(KDDX), 한국형 차세대 스마트 구축함(KDDX-S), 합동화력함 등 수상함 모형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면전 치달은 HD vs 한화

한화 “HD 임원 개입” 경찰 고발까지

최근 두 회사는 신경전을 넘어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두 회사 갈등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전인 2014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도 등을 몰래 취득한 사실이 밝혀졌다. 개념설계는 3급 군사 기밀에 해당한다.

지난해 사건에 연루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모두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며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올 들어 재점화했다.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27일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수주 입찰 자격을 박탈하지 않자 한화오션이 강하게 반발한 것.

앞서 HD현대중공업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방위사업청으로부터 내년 11월까지 입찰 시 보안 부분 평가에서 1.8점을 감점받았다. 이 감점으로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밀린 적이 있다. 당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점수는 각각 91.8885점과 91.7433점으로, 보안 감점이 없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감정과 별개로 방위사업청은 국가계약법과 방사법에 따라 부정당 업체 제재를 위한 계약심의위원회도 열었다. 심의위에서 방사청은 6개월에서 5년까지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이 경우 HD현대중공업은 사실상 국내 해군 함정 등 각종 방위 사업 입찰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데 방사청은 지난 2월 27일 계약심의위를 열어 HD현대중공업에 ‘행정지도’ 처분을 의결했다. 국가계약법상 제척 기간인 5년이 지났고, 청렴 서약 의무를 받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지도 처분으로 HD현대중공업은 향후 입찰 시 일부 감점은 당할 수 있지만, 입찰 참가 자격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HD현대중공업으로선 한시름 놓은 셈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화오션이 반발했다.

한화오션은 군사 기밀 유출 사건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개입 정황이 있다며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지난 3월 4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제출했다. 과거 기무사나 울산지검 수사 기록, 유죄가 확정된 직원 판결문을 보더라도 임원 개입 없이 기밀 유출을 실행하기 어렵다며 항변했다. 이어 5~6일 이틀간 서울, 경남 거제, 창원에서 연이어 기자 설명회를 열고 고발 배경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섰다. 수사 결과에서 임원이 개입됐다고 나오면 HD현대중공업은 입찰 자격을 제한받는다.

HD현대중공업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미 사법부 판단까지 나온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왜 이렇게까지?

수출 시장 선점 두고 ‘기 싸움’ 해석도

업계는 이번 갈등이 특수선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이해관계 때문에 나타났다고 본다.

우선 국내 대표 방산그룹인 한화는 지난해 조선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특수선 경쟁력에 주목했다.

한화오션은 한국형 구축함 KDX-I의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맡았고, KDX-Ⅱ·Ⅲ의 후속함도 건조했다. 잠수함 분야에서는 장보고-I·Ⅱ·Ⅲ를 모두 수주했다. 방산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시스템 등과 한화오션을 수직계열화해 시너지를 도모하겠다는 한화그룹의 구상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그룹 미래 전략이 달린 분야에서 불공정 행위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례적으로 한화오션의 강한 대응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반면, 조선업계 세계 1위인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도 특수선은 놓칠 수 없는 분야다.

HD현대중공업은 수상함 연구개발 엔지니어를 180명 이상 동원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조선소다. ‘전투체계통합·운영시험능력팀(ITT)’도 운용 중이다. 현재까지 102척의 수상함을 건조하며 실적 면에서 한화오션을 앞서왔다. 한국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포함해 국내에서 건조됐거나 건조 예정인 이지스함 6대 중 5대를 수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은 기밀 유출에 따른 보안 감점으로 지난해 울산급 배치-Ⅲ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고배를 마셨다. 그만큼 이번 KDDX 참여가 간절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이나 특수선 매출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도 “군함은 상징적인 사업이라 놓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향후 특수선 수출을 고려한 두 업계의 ‘기 싸움’이라는 시각도 있다. 향후 수출 시장을 선점하려면 KDDX 사업을 수주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마침 미국과 필리핀 등이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물량을 해외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수출 경쟁은 더욱 심화하는 모습이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중국에 수주 물량이 추월당한 상황에서 조선업계 미래 전략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회사로 거듭나거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며 “함정은 창출되는 시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국내보단 해외 시장인데, KDDX 사업으로 해외에 내세울 수 있는 실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이번 한화오션의 고발로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수사 방향과 결과에 양 사의 자존심과 막대한 이익까지 걸려 있어 재계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1호 (2024.03.20~2024.03.26일자) 기사입니다]